가끔씩 노크 톸돜

7.진보정치란 무엇인가

진보는 보수와 어떻게 다르며, 진보정치는 국가를 어떻게 바꾸려고 하는 것인가?


베블런은 이렇게 표현했다. "인간이 만든 제도와 인간 특성에서 일어나는 진보는 최적의 사유습성이 자연선택되는 과정이다."


베블런에게 진보는 어떤 당위적 요구나 지향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와 삶의 방식, 사유습성의 실제적이고 불가피한 진화를 의미한다. 진보는 피할 수도 멈출 수도 없다는 것이다.


진보는 생활환경의 변화가 요구하는 새로운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그에 따르는 제도의 조정 필요성을 능동적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정신적 태도이며, 보수는 익숙한 것을 지키려 하다보니 변화를 거부하게 되는 태도를 말한다. 보수의 핵심은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진화의 법칙을 인간의 제도에 적용하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틀렸다."고 해야 마땅하다. 현재의 제도는 과거의 지배적 사유습성을 체현하는 것이어서 오늘의 생활환경이 요구하는 최적의 대응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환경의 변화를 긴급한 상황으로 인식한 사람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생활양식을 신속하게 받아들인다. 진보주의자가 되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자의 여집합이다. ... 환경의 변화에 의해 강요당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영원히 보수주의자로 살아갈 것이다. 보수주의는 특정한 계급의 독점적 특성이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속성이다.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바꾸고 조정하는 작업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유한계급은 돈과 권력이 있기 때문에 이처럼 귀찮은 일을 하지 않아도 사는 데 별 지장이 없다. 어지간한 생활환경의 변화에는 압력을 느끼지도 않는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현존하는 제도와 지배적 생활양식은 모두 좋고, 옳고, 합당하고, 아름답다고 받아들인다. 그들에게 보수주의는 고상하고 품위 있으나 혁신은 천박하고 나쁘다.


그런데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유한계급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하위 소득계층 유권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너무나 가난한 나머지 혁신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이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오늘의 상황에 불만을 느낄 기회가 적어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 변화에 적당한 압력을 느끼면서도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가장 뚜렷한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서나 고령층이 청년들보다 더 보수적인 현상도 마찬가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젊은이들은 기존의 제도와 사유습성에 노출된 기간이 짧으며 지적 활동이 상대적으로 왕성하다. 기존의 사유습성에 대한 집착이 덜하고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가 풍부하다. 반면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유습성은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지니며 그것을 바꾸는 데 쓸 수 있는 정신적 에너지는 부족해진다. 사람 따라 정도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피한 생물학적 필연이다.


계급적 귀속은 진보주의자와 보수주의자를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지만 유일한 변수는 아닌 것이다.


새는 좌우 두 날개로 난다. 보수주의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향이다. 보수가 구심력이라면 진보는 원심력이다. 사회는 진보와 보수가 있기에 유지되고 발전한다. 진보주의자만 있는 사회는 안정성이 없을 것이다. ... 반면 보수주의자만 사는 세상에서는 혁신이 불가능할 것이다. ...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둘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김상봉 교수의 견해를 소개한다. 이것이 요즘에 본 것 중에 진보의 울타리를 가장 좁게 설정한 이론이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이 글을 쓴 시점의 김상봉 교수에게 진보란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이다.


김상봉과 달리 매우 넓게 진보의 울타리를 친 사람은 오랜 세월 영국 정부의 외교 관련 기밀문서를 다루었던 역사가 에드워드 카가 아닐까 싶다. ... 진보는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을 의미한다.


카는 진보를 일으키는 근본적인 도전의 목표와 내용이 역사의 흐름 속에서 결정된다고 보았다. 진보주의 운동의 목표와 내용은 밖에서 주어지거나 고정된 것이 아니다.


이남곡에 따르면 진보는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것에서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이것을 지향하는 게 진보주의이다.


나는 이남곡의 견해가 진보와 진보주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데 적합한 '중용적'입장이라고 생각한다. 진보는 특정한 사상이나 이론, 어떤 구체적 국가정책이나 제도에 대한 특정한 견해와 고정적으로 결합되지 않는다.


과연 정치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는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견해를 적절한 답변으로 채택한다. 베버는 정치를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폭넓게 규정했다.


그러나 진보정치를 하려면 정치 그 자체를 의미 있는 활동으로 인정하는 진취적 국가론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하버드대학교의 마이클 센델 교수가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의 맨 마지막 문장에서 조심스럽게 펼친 견해에 공감한다. "도덕에 개입하는 정치는 회피하는 정치보다 시민의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되며 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더 희망찬 기반을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최선의 국가는 행복하고 잘나가는 국가이다. 그런데 훌륭한 행위를 하지 않고는 잘나갈 수 없으며, 개인이든 국가든 탁월하고 지혜롭지 않고서는 훌륭한 행위를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국가를 만들어 국가의 텔로스를 실현하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종국적으로 시민 각자가 훌륭해지라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훌륭한 국가, 선을 행하는 국가, 정의를 실현하는 국가를 원했다. ... 자유주의 국가론은 목적론적 국가론과 큰 어려움 없이 결합할 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위대한 개인주의자' 소로였다. ... 그가 절실히 원했던 것은 '더 나은 정부'였으며, 더 나은 정부를 얻는 길로 나아가려면 각자가 자신이 존경할 만한 정부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로가 원했던 국가는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대하고 개인을 한 이웃으로 존경할 줄 아는 국가"였다.


진보정치는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려는 활동이다. 직접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줌으로써 국가로 하여금 선을 행하게 하는 것이 바로 진보정치의 목표여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국가론은 철학 차원의 국가론이 아니다. 복지국가는 선을 행하는 국가의 한 형태, 또는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정책과 제도의 조합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 


복지국가의 주요 기능은 세 가지이다. 첫째, 국가의 규제를 통해 일정한 수준에서 시민들을 경제적으로 보호하는 것이다. 둘째, 조세징수와 보조금 지급을 통해 소득을 재분배하는 일이다. 셋째, 시장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와 공동장비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흔히 복지국가론이 진보주의자의 전유물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어느 국가론도 완전하게 배척하지는 않는다.


진보주의자만 복지국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복지국가론이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유일한 기준 또는 이데올로기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이것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내세우게 되면 오히려 복지정책에 대한 국민의 호감과 수용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