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노크 톸돜

4.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플라톤은 국가가 자기의 텔로스를 실현하려면 주권을 철학자에게 맡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철학자는 단순히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무엇이 선인지, 무엇이 정의인지 아는 사람이다. 플라톤의 철학자는 겸허하게 진리를 찾는 구도자가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다 안다는, 거만한 진리의 소유자이다. 그는 영원한 천국의 '형상'이나 '이데아'를 보고 교류할 수 있다. 지혜로나 능력으로나 모든 사람 위에 군림하는 신과 같다. 신은 아니더라도 신성한 존재다. 전지전능한 자에 가깝다. 단순한 철학자가 아니라 철인왕이다. 결국 플라톤이 요구한 것은 학식의 지배 또는 현자의 지배였던 것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그야말로 노골적인 완력이 권력의 원천이었고 지식은 부차적인 요소에 지나지 않았다. 지식인은 강한 군대를 보유한 군주가 지식의 중요성을 알고 합당한 예우를 해야만 뜻을 펼 수 있었다. 이런 시대에 맹자는 완력만으로는 다스릴 수 없으며 백성들의 물질적 삶을 풍요롭게 하고 인의로 사람을 대하는 덕치만이 군주가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왕도정치론을 펼친 것이다.

지식과 지혜를 가진 철학자가 다스려야한다는 플라톤의 주장이 순수한 당위론인 것과 달리, 덕을 갖춘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는 맹자의 이론은 당위론인 동시에 관찰과 경험에 토대를 둔 현실론이었다.


플라톤과 맹자의 국가론은 서로 다른 점이 많지만 한 가지는 같다. 바로 목적론적 국가론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국가는 선,정의,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국가는 안정되고 통합된 국가일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트라시마코스는 '정의는 강자의 이익'이란 말을 남겼다.


정의는 더 강한 자의 이익이다. 모든 정권은 자기의 편익을 목적으로 삼아서 법률을 제정한다. 민주정체는 민주적인 법률을 참주정체는 참주체제의 법률을, 그 밖의 정치체제도 다 이런 식으로 법률을 제정한다. 일단 법 제정을 마친 다음에는 자기들에게 편익이 되는 것을 올바른 것으로 공표하고, 이를 위반하는 자를 범법자나 올바르지 못한 짓을 저지른 자로 처벌한다. 그래서 정의는 더 강한 자의 이익이라는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정권의 편익을 정의로 간주한다. 정치권력이 힘을 행사하기 때문에 정의는 강자의 편익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올바른 추론이다.



만약 최선의 인물이 국가권력을 장악하도록 보장하는 확실한 방법이 없다면, 현실적으로 의미 있는 질문은 "정치제도를 어떻게 조직해야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더라도 악을 많이 저지르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느냐"로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포퍼는 이 근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해법으로 민주주의를 제시했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는 국가를 잘 통치할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과 정당을 국민이 선택하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주권자인 국민 모두가 동등한 의사결정권을 행사하는 보통선거제도가 그런 사람과 정당을 선택하는 방법으로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이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론적으로도 그러려니와 세계 각국의 경험을 보아도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을 맡긴 예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히틀러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범죄를 저질렀던 히틀러는 독일 국민이 보통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한 권력자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악하거나 무능한 또는 둘 다인 사람을 지도자로 선출한 사례는 숱하게 많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홉스와 마키아벨리를 추종하는 인물이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다른 권력기관들을 자유주의자나 마르크스주의자가 장악한다면, 만사를 다 자기 마음대로 하지는 못한다. 그런데 이것을 민주주의 정치제도의 장점으로 받아들인다면 그 약점도 수용해야 한다. 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국가가 선을 행하는 것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플라톤의 현자가 대통령이 된다 할지라도 자신이 선이라고 생각하는 일을 마음껏 하지는 못한다. 국회와 헌법재판소, 언론과 정당 등 다른 권력기관들을 사악한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훌륭하고 지혜로운 최선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없다면 무척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은 최악의 인물이 권력을 잡아도 마음대로 악을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대가로 감수할 수밖에 없는 부작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