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노크 톸돜

6.혁명이냐 개량이냐

어떻게 국가를, 국가의 기본 질서를, 국가권력의 기능과 작동방식을 바꿀 것인가?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폭력을 사용해서라도  모든 것을, 단숨에, 근본적으로 바꾸는 사회혁명이다. 다른 하나는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가능한 것부터 하나씩 고쳐나가는 점진적 개선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국가권력을 전복하고 새로운 권력을 수립하는 것을 일반적으로 혁명이라고 한다. 혁명 중에서 낡은 국가권력이 발딛고 있던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꾸는 혁명이 사회혁명이다. 자유롭고 평등하며 공정하다고 만인이 인정하는 사회는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다. 모든 억압과 불평등, 불공정과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여는 혁명은 그래서 언제나 매혹적이다.


국가가 계급지배의 도구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한, 인민들은 국가폭력에 대항하거나 국가를 전복하는 사회혁명에 나서지 않는다. 마르크스의 예언과 달리 발전한 산업국가에서 사회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영국과 프랑스, 미국의 프롤레타리아트가 국가를 단순한 계급지배의 도구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 민중은 폭력으로 국가를 전복하고 사회의 기본 질서를 바꾸는 사회혁명에 나서게 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라스키의 대답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혁명이 일어나는 첫 번째 조건은 사회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고, 그 사실을 민중이 분명하게 인지하는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이 없는데 특정한 사람들이 반칙으로 부를 축적하고 부당한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믿을 때, 정의가 짓밟히고 불의가 횡행하는 세상이 확 뒤집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때, 혁명의 첫 번째 조건이 갖추어진다.

혁명의 두 번째 조건은 민중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사회를 지배하는 사람들에게 그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사회에 큰 문제가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는 확신이 널리 퍼져 있을 경우에는 폭력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다.

혁명의 세번째 조건은, 앞에서 지적한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폭력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을 남김없이 행사했다는 사실이 널리 인정받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다 충족되면 조만간 사회혁명이라는 열병이 국가를 엄습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혁명이 성공하려면 국가권력이 썩은 문짝처럼 허약해야한다. 지배층의 권위와 위신이 바닥으로 추락해 누구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상황이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혁명은 썩은 문짝을 걷어차는 것이다.


평화주의자 톨스토이는 사회혁명을 좋게 보지 않았다. 농노제와 같은 불합리한 계급제도에 반대했고 자본주의가 몰고 온 부의 불평등을 혐오했지만 혁명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았다. 

권력기관이 존재하는 한, 모든 부는 계속해서 권력자의 수중에 들어갈 것이다. 그는 혁명이 권력기관 그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세속의 해법을 찾을 수 없었던 톨스토이는 결국 종교적 해결책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가 제시한 방법은 각자가 욕망을 줄이는 것이었다.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계시하고, 부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가로막는 장애물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제 사회혁명이 초래한 결과에 대해 이야기할 때가 되었다. ... 고귀한 동기를 가지고 일으킨 혁명이 처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회혁명이 이런 참극을 빚어낸 것일까? ... 현재를 인식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인간의 능력 그 자체가 제한되어 있다는 것이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포퍼는 이 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포퍼는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도모하는 혁명에 '플라톤식 접근법에 입각한 유토피아적 공학'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유토피아주의는 사회악을 뿌리째 뽑아버려야 한다는, 세상에 품위 있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비위에 거슬리는 사회제도를 완전히 근절해버려야 한다는 확신이다. 그것은 비타협적 급진주의다. ... 지금보다 좀더 낫고 좀더 합리적인 정도가 아니라 추함이 전혀 없는 세계, 낡은 쪼가리들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지저분한 옷이 아니라 완전한 새 옷, 참으로 아름다운 새 세상을 건설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이 있다.


만약 '유토피아적 공학'이 사회를 개선하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시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포퍼는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가 '점진적 공학' 이라고 이름 붙인 사회 개량의 길이다. 점진적 공학을 채택하는 정치가는 이상적 사회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다만 어떤 경우에도 최대의 궁극적 선을 추구하고 그 선을 위해 투쟁하기보다는 최대의 악과 긴급한 악에 대항해서 투쟁한다.

포퍼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상유지를 강력하게 옹호한 신자유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무작정 현상유지가 선이라고 주장하거나 사회혁명을 비난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사회혁명이 불합리한 현실을 개선하는 합리적인 방법인지 심각하게 의심했을 뿐이다.

그러면 점진적 공학이런 어떤 것인가? 포퍼의 표현에 따르면 '민주적 간섭주의'다. 포퍼는 19세기 유럽 자본주의 체제를 '방만한 자본주의'로 규정하면서, 이것이 정의롭지 못하며 비인간적이라는 점은 논쟁할 여지가 없다고 했다.

여기서 포퍼는 마르크스와 같은 견해를 표명했다.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자멸한다."


무제한의 자유는 강자가 약자를 위협하여 약자의 자유를 강탈할 자유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법이 만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범위만큼 국가는 자유를 제한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타인의 자비심에 내맡겨져서는 안 된다. ... 경제적 권력은 물리적 폭력만큼이나 위험하다. 국가는 어느 누구도 굶어죽거나 경제적 파멸이 두려워 불평등한 관계 속에 빠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한다. 방만한 자본주의는 경제적 간섭주의에 굴복해야 한다.


그러면 국가는 어떻게 간섭해야 하는가? 첫째는 보호제도의 '법률적 틀'을 설계하는 제도적 간섭이다. 단결권을 비롯한 노동3권 보장, 해고 보호, 유아노동 금지와 모성 보호, 산업안전과 산업보건을 위한 규제, 법정노동시간 제한, 최저임금제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노동시장에 대한 국가규제가 모두 이 제도적 간섭에 포함된다. 둘째는 통치자가 설정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권력기관을 동원하여 어떤 범위 내에서 조처를 취하는 '대인적-직접적 방법'이다. 국가권력이 구조가 아니라 과정에 개입하여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 그런데 민주적 간섭주의는 언제나 제도적 방법을 우선적으로 택하며, 이것이 부적합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직접적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 단순한 형식적 자유, 민주주의, 정부를 심판하고 갈아치울 인민의 권리, 이것이 정치권력의 남용에서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유일한 장치이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원리상 피지배자에 의한 지배자의 통제를 의미한다. 그리고 정치적인 힘은 경제적인 힘을 통제할 수 있고, 그 통제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경제권력도 통제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없다.


포퍼는 폭력혁명이 정당한 경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부는 두 유형이 있다. 하나는 유혈사태 없이 선거로 교체할 수 있는 정부이고 다른 하나는 혁명이 아니고는 절대 축출할 수 없는 정부인데, 앞의 것은 '민주주의'요 뒤의 것은 '독재'다. 폭군 치하에서 다른 가능성이 없는 경우에는 폭군살해와 폭력혁명도 정당하다. 그러나 그 혁명의 유일한 목적은 민주주의 수립이어야 한다.


사회혁명에 반대하면서 민주주의를 세우는 정치혁명 하나만을 인정한 포퍼의 견해는 논리적-경험적 근거가 부실하다. 혁명이 어디까지 나아갈지는 누구도 미리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사회의 상황과 대중의 소망이 어떤 것인가에 달렸있다. 

민주주의 정치혁명과 급진적 사회혁명 중 하나를 좋아할 자유는 허용되어 있지만, 현실에서는 누구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