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노크 톸돜

6.혁명이냐 개량이냐

자유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길이며, 자유를 제약하는 모든 시도는 전체주의로 귀결된다는 극단적 이론을 펼친 철학자도 흔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하이에크였다.

포퍼는 전체주의를 혐오했지만, 하이에크는 전체주의를 두려워했다. 하이에크에게는 '겁에 질린 자유주의자'라는 이름이 어울릴 것이다.

하이에크가 신봉한 사회운영의 기본 원리는 자연발생적인 힘을 최대한 이용하고 강제력에 최소한으로만 의존하는 것이었다. ... 하이에크의 주장에 따르면 자연발생적인 힘의 핵심은 경쟁이다. 경쟁이 최대한 유익하게 작동하도록 의식적으로 사회체제를 만들어야 하며 수동적으로 제도를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포퍼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경험과 지식의 부족을 이유로 들어 사회혁명에 반대했지만 하이에크는 혁명의 열정에 사로잡힌 사람 그 자체를 신뢰하지 않았다. 사회혁명의 열정을 광신으로 간주했다. 하이에크에 따르면 사회를 계획하고자 하는 가장 열광적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된다. 성자와 같은 일편단심의 이상주의자와 미치광인 광신자의 거리는 단지 한 발짝에 불과할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의 주장을 요약해보자. ... 가치의 척도는 각자의 정신에만 존재한다는 것이다.다른 일반적 가치척도는 없다. ... 한마디로 말해서 선악을 판단하는 도덕기준은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있으며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는 이야기다.

이상국가에서는 특정한 하나의 가치규범이나 목적체계가 사회와 사람을 완전히 지배한다. 그 가치가 평등이든 정의든 다른 무엇이든 마찬가지이다. 여기서는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숨을 쉴 수 없다.

그래서 전체주의 국가는 교육과 언론을 장악하고 통제한다. 국민을 세뇌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국가는 국민들의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고 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발본색원 할 수 있다. 결국 '사회계획'은 도덕뿐만 아니라 사상의 생명인 이성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하이에크에게 자유는 더 높은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자유는 그 자체로 가장 높은 정치적 이상이다. ... 시민사회와 개인의 삶에서 각자 최고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대상들을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 자유가 필요하다. 민주주의는 본질적으로 내적 평화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실용적 도구에 불과하다.


하이에크에게 중요한 것은 권력의 원천이 아니라 권력의 제한이다. 국민이 정당하게 선출한 권력이라 할지라도 법 앞의 평등을 넘어서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왜? 그런 시도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일지라도 모두 전체주의로 가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규칙이라도 만인에게 똑같이 적용되기만 한다면 나쁠 게 없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주장이다.


자유와 경쟁이 필연적으로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결과를 미리 예견하고 특정인에게 이익이나 불이익을 주려고 만든 것이 아니다. ... 만약 미리 정해진 기준에 따라 부의 분배가 이루어지도록 보장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의도적으로 누가 무엇을 가져야 하는지를 결정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경제 전체를 계획해야 한다. 경제 전체를 계획하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전체주의로 가는 길에 들어서게 된다.

이 주장이 옳다면 국가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것일까? 경쟁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조건을 창출하는 일 하나뿐이다.

그는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유라는 하나의 가치가 전일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와 정의나 평등이라는 단일가치가 지배하는 다른 전체주의 사회가 뭐 그리 다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이에크는 더 좋은 사회로 가는 길을 어디에서 찾았을까? 답은 국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하이에크는 사람들이 사회를 움직이는 원천인 미덕을 존중하지도 실천하지도 않는 현실을 개탄했다. 독립심, 자조,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는 태도, 다수에 대항하여 자기의 소신을 지키는 각오, 이웃과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집단주의는 이런 미덕을 모두 파괴한다.

민주주의 문명국가가 걸어야 할 길은 하이에크의 길이 아니다. 전체주의를 피하려고 할 때 우리가 무엇보다 우선해서 선택하고 시도해야 하는 것은 포퍼의 길이다. 이 길이 열려 있는 곳에서 마르크스의 길이 열릴 가능성은 없다. 사회혁명의 문을 걸어 잠그고 싶다면 부지런히 점진적 개량을 시도해야 한다.